가스사용의 역사
    화석연료로서 약 35억년 전 지구에 생명이 탄생하고 육지와 바다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땅속에 유기물이 묻혀져 오랜시간 동안 압력과 열, 화학작용 등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화석 연료 중 석탄은 나무가 땅속에 묻혀 오랜 시간에 걸쳐 높은 열과 압력으로 분해되어 생성된 것이고 석유와 천연가스(Natural Gas)는 다양한 생성설이 있으니 육지와 근접한 해저분지에서 플랑크톤의 일종인 규조가 퇴적되어 진흙 퇴적물에 의해 공기가 차단된 상태에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가스는 해저의 지하 암석층에서 오랜 생성과정을 거쳐 석유와 분리된 천연가스와 인위적 방법에 의해 석탄과 석유에서 분류 제조되는 석탄가스, 석유가스(Petroleum Gas)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고대문헌에 따르면 고대문명에서 자연에 노출된 가스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중국에서도 기원전 200년경에 제염공업에 천연가스를 사용하기 위해 염정을 시추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석탄가스의 사용

      인류가 인위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석탄으로부터 건류된 가연성가스를 추출하는데 성공한 것은 1609년 벨기에의 화학자 장과 파스테스, 헤르몬트로 알려져 있으며 스코틀랜드의 윌리암 머독(William Murdock)은 1792년에 석탄가스를 금속파이프로 끌어들여 자기 집의 실내 조명용 가스등을 밝히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후 1812년에 영국에서 프레드릭 윈저(Frederick Winsor)가 런던의 가로 조명을 목적으로 세계 최초의 가스회사인 '런던 앤드 웨스트민스터 가스라이트 앤드 코크스'사를 설립하였으며 1829년경에는 영국에서 200여개의 가스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816년에 볼티모어 가스등 회사가 설립되었으며, 프랑스에는 1820년부터, 중국은 1864년 상해에 최초의 가스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국내 가스산업의 도입에 영향을 준 일본은 1872년에 요코하마에서 최초의 가스등이 점화되었고, 조명용 석탄가스가 생산된 이래 1885년에 동경가스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가스의 사용이 본격화 되었습니다. 석탄가스는 에디슨이 1879년 전구를 발명한 이래 시작하여 1930년대 석유가 이용되기까지 조명용과 난방용으로 이용되었습니다.

    • 천연가스의 사용

      석유에서 추출되는 석유가스는 미국의 경우 1859년에 펜실바니아에서 천연가스를 이용한 드래커의 유정이 발견되었으며 1938년에는 이미 천연가스 공급을 규제하는 천연가스법이 제정되기도 하였습니다. 가스등이 최초로 사용된 영국은 1959년에 최초로 액화천연가스를 도입하여 석탄가스를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일본은 1955년부터 석탄가스에서 석유계 가스로의 전환을 시작하였습니다.

    • 우리나라 최초의
      가스공급

      우리나라는 대원군의 쇄국정책 이후 고종 13년(1876년)에 일본과 조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여 국교가 체결되었습니다. 1876년 5월 22일 수신사 김기수가 1차 수신사로 파견되었으며, 수신사 일행에 의해 일본이 사용하는 가스를 보고 그 내용을 최초로 기록에 남기게 되었습니다.(김기수 '일동기유' 3권 성곽편, 안광묵 '창사기행') 1차 일본 방문 이후 1881년에 파견된 신사유람단의 단원 중 강진형이 작성한 일동록(日東錄)에 는 가스등에 관한 기록이 보다 자세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가스산업이 시작된 것은 미국인들에 의해 경복궁에 전기가 최초로 공급된 1887년 3월 보다 10년이 뒤진 1907년 6월 27일로 일본의 자본으로 시작된 일한와사 주식회사 (日韓瓦斯株式會社)의 설립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일한와사주식회사는 1909년 10월 31일에 용산에서 석탄가스 제조 공장을 준공하고 1909년 11월 3일부터 진고개 등 일본인 상가 밀집지역과 거주지를 대상으로 최초의 가스공급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일한와사주식회사는 1915년에 경성전기주식회사(京城電氣株式會社)로 개명하여 운영되었으며, 일제의 침략과 함께 1942년까지 경성전기주식회사 외에 지역별로 5개의 가스업체 4개 공장이 운영되었습니다.

      1942년에는 가스수용 호수가 2만8천여호에 이르렀으나, 실제 우리 국민이 사용하는 가스의 사용량은 전체 사용량의 6%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석탄가스가 공급될 당시에는 가스등이 전등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밝기도 밝아 크게 호응을 얻었으며 이런 호응을 바탕으로 부산(1912), 평양(1936), 대구(1937), 신의주(1938)에서 가스공급회사가 설립되어 가스를 공급하였습니다.

    • 고압가스의
      생산시작

      조명용 석탄가스와는 달리 고압가스는 1927년 5월 2일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의 설립으로 비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산소, 수소, 질소,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가스를 생산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전문적으로 고압가스를 생산한 것은 1930년경인 것으로 보고 있으나, 기록이 남아있는 자료는 1937년에 일본 제국산소주식회사(帝國酸素株式會社)가 프랑스에서 수입한 설비로 영등포에 제국산소주식회사를 설립, 운영한 것과 부산에 동양산소공장, 서울 청파동에 금강산소공장이 가동된 것을 고압가스의 태동기로 보고 있습니다. 1945년 해방과 1950년의 6.25 전쟁을 거치면서 가스산업은 계속된 불황을 겪게 되었고, 1961년부터는 가스의 공급원을 조명용 석탄가스에서 난방용 석유가스로 전환하여 외국에서 LPG를 용기에 담아 수입하는 수입판매회사가 설립되었으나, 수입 LPG의 높은 가격과 전통적 생활관행으로 인해 보편화된 연료로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 LPG의 본격적인
      보급

      LPG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64년에 대한석유공사 울산정유공장이 설립되어 원유정제과정에서 LPG가 생산되면서 확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6년에는 교통부가 6개월간 LPG 버스의 시험운행을 실시하여 서울역에서 정릉을 운행하는 최초의 부탄용 버스가 등장하였고 1969년에는 LPG용 버스가 700대로 증가되어 수송용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수요 증가와 중화학 중심의 경제 개발 정책이 맞물려 1969년에는 호남정유, 1971년에는 경인에너지의 원유 정제시설이 추가로 건설되어 공급이 확대되었으며 1972년 하반기 부터는 영업용택시에 LPG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1974년에는 LPG를 사용하는 택시가 7,000대의 규모로 증가하였습니다. 1973년 10월 6일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OPEC의 석유수출금지 조치와 양적 제한을 통해 1973·74년에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고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에너지 위기로 인해 우리 경제는 에너지 수급구조에 대한 변화를 주게 되었으며 석유를 대체할 가스 에너지가 일반인에게 한발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LPG 대량 생산체제가 구축되면서 정부는 도시연료의 현대화를 목표로 도시가스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1970년 10월 1일에 시범적으로 동부 이촌동의 3,000가구를 대상으로 LPG/AIR 혼합방식의 도시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하였으며 시영도시가스 공장의 준공(1972년 11월 14일)과 함께 영등포와 마포구의 6,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나프타 분해방식의 취사용 가스를 공급하였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도시가스 사업이 더욱 확대되어 민영 도시가스 회사의 설립을 통한 지역별 도시가스의 공급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도 제2차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 다원화 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석유 이외에 LPG(액화석유가스), LNG(액화천연가스)의 수입을 추진하였으며, 1986년 10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LNG를 최초로 수입하여 도시가스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스는 우리 경제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석유를 대체할 청정하고 편리한 연료로서 인식되어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서게 되었으며 현재 가장 대중화된 생활연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